집에서만 화내는 우리 아이, ‘안식처’와 ‘훈육’ 사이의 균형 잡기
안녕하세요, 소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민국입니다.
진료실에서 수많은 부모님을 만나 상담을 하지만, 저 역시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평범한 아빠입니다. 최근 저희 집에서도 아내와 저를 당혹스럽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께 칭찬이 자자한 모범생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상냥한 저희 딸아이가, 현관문만 열고 들어오면 180도 다른 사람이 되곤 했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날카롭게 화를 내고 엄마와 저에게만 유독 짜증을 쏟아냈죠. 그럴 때면 부모로서 참 서운합니다. '밖에서 하는 반만큼만 집에서 해주지' 싶어 마음 한구석이 아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의 날카로운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정신과 의사이기 이전에 아빠로서 한 가지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 아이에게 부모는 '가장 안전한 감정의 해방구'입니다
아이는 지금 밖에서 못다 푼 스트레스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우리에게 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규칙을 지키며 하루 종일 '착한 아이'로 지내온 아이에게는 그 피로를 쏟아낼 공간이 절실했던 거죠.
"여기라면 내가 어떤 못난 모습을 보여도 나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야."
아이가 집에서 부리는 짜증은 역설적으로 우리 부모가 아이에게 완벽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는 아주 건강한 신뢰의 신호입니다. 밖에서도 참고 집에서도 눈치를 보느라 마음이 병드는 것보다, 집에서라도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2. 그렇다면 무례한 행동도 다 받아주어야 할까요?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과 무례함을 방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기 때문에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사람에 대한 예의 없음'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감정은 읽어주되, 행동에는 선을 그어주세요. "오늘 밖에서 에너지를 많이 써서 힘들었구나. 마음껏 쉬고 싶은데 엄마가 말을 걸어서 짜증이 났지?"라며 감정은 충분히 수용해 주세요. 하지만 이어서 "그렇다고 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무례하게 말하는 건 안 돼"라고 표현 방식에 대해서는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나-전달법(I-Message)'을 활용해 보세요. "너 왜 이렇게 버릇없어!"라는 비난 대신, "네가 그렇게 거친 말을 쓰면 아빠는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아파"라고 부모의 솔직한 감정을 전달해 보세요. 아이가 부모를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소중히 대해야 할 인격체'로 인식하게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영원한 안식처이자 든든한 등대로 남기 위하여
우리는 아이가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항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아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비추는 등대의 역할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집에서 아이의 폭풍 같은 감정을 묵묵히 견뎌내고 계신 모든 부모님,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아이는 지금 여러분을 세상에서 가장 깊이 신뢰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 마음이 잘 전달되어 우리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든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는 안식처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아이가 짜증을 낸다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아, 내가 오늘 우리 아이에게 정말 든든한 빽(?)이 되어주었구나!' 하고 말이죠.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