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치명적인 착각 하나

안녕하세요, 소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민국입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들의 표정만 봐도 그간 마음고생이 얼마나 깊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들이 보기엔 소위 ‘성공한 삶’을 사는 분들일수록 내면의 붕괴 위험도가 더 높다는 사실입니다.

번듯한 커리어와 안정적인 환경을 갖추었음에도 “원장님, 제 안은 매일 썩어들어가는 것 같아요”라며 극심한 불안과 번아웃을 호소하시곤 합니다.

상담을 진행하며 이분들의 사고 패턴을 분석해 보면, 하나의 거대한 방어기제이자 강박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자아를 ‘오점 없는 훌륭한 작품’으로 박제하려는 강박적인 시도입니다.

‘상태(Being)’보다 ‘기능(Functioning)’에 집착할 때 생기는 병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마음의 병리를 꿰뚫는 날카로운 말을 남겼습니다.

"불안한 사람은 자기 인생을 너무 대단한 작품으로 만들려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불안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증폭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내 인생이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메디컬 드라마나 성공 신화처럼 흘러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좋은 직업, 무결점의 인간관계, 세련된 취향, 그리고 불안 요소가 전혀 없는 안전한 미래까지 말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정신과 의사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이런 분들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상태(Being)’에 머물지 못합니다. 대신 남들에게, 혹은 엄격한 초자아(Super-ego)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기능적인 인간(Functioning)’으로 증명받기 위해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를 과소비하고 계십니다.

“불안해하면 안 돼”, “남들에게 뒤처지면 끝장이야”, “감정을 들키면 나약한 거야”라는 내부의 가혹한 비판자(Inner Critic)가 스스로를 밤낮으로 감시하니, 결국 뇌의 스트레스 조절 중추가 버티지 못하고 방전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진짜 디폴트 값(Default)

제가 매일 진료실에서 임상적으로 확인하는 인간의 본질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초라해지고, 사소한 것에 질투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도 안 되는 감정적 선택을 내리곤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의지가 박약해서도, 인격적인 결함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의 디폴트 값(기본값)이 원래 그렇게 취약하고 흔들리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학문적으로 마음을 잘 안다 해도 가끔은 사소한 일에 마음이 가라앉고 판단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자산가도, 학자도 마음의 가장 깊은 기저(Base)를 열어보면 저마다의 찌질함과 불안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완전함은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인간의 정상적인 스펙트럼입니다.

정신적 과부하를 줄이는 방법: ‘초안(Draft)’의 수용

만약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불안하시다면, 여러분의 인생을 너무 대단한 예술품으로 만들려는 그 팽팽한 심리적 긴장감을 이제는 의식적으로 이완(Relaxation)시키셔야 합니다.

  • 조금 어설프고 계획에서 벗어나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삶의 가변성입니다.

  • 가끔 남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도 괜찮습니다. 인간미의 영역입니다.

  • 길을 잃고 한동안 헤맨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구적인 퇴행이 아닌 일시적인 정주일 뿐입니다.

우리는 단번에 완성되어 미술관 유리창 뒤에 전시되는 완벽한 ‘조각상’이 아닙니다. 매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정하고, 지우고, 덧대어 가며 평생에 걸쳐 고쳐 쓰는 ‘초안(Draft)’에 가깝습니다. 초안은 원래 흐트러져 있고 엉성한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오늘 하루는 나 자신에게 매서운 진단명을 붙이며 채찍질하는 대신,

“내 초안이 오늘도 조금 구겨졌네. 뭐, 내일 다시 다듬어 쓰면 되지”

하고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언제든 혼자서 그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기 벅차실 때는, 이곳 소민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여러분의 불안한 초안을 있는 그대로 함께 읽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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